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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그래서 내 시야를 조금 좁혀서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켰더라면
역시 계속 되돌아오게 되는 지점은 나 자신이다.
![]() 저자가 동기부여 연사쯤 된다면야 예수님 말씀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어디에 갖다 붙이든 몰라서 그런다고 치겠는데, 목사라는 이름을 걸고 책을 쓰면서 오히려 본인의 메시지에서 종교색을 제거함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겠다는 논리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독교를 진리에 이르는 다양한 길 중 하나라고 이야기해서 기독교의 '배타성'을 희석시킴으로써 기독교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으나,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배타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머지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열린 자세라는 잘못된 생각을 접하게 될 때마다 새삼 또 놀라게 된다. 어찌 저렇게 허술한 논리가 그리도 많은 사람에게 그리도 잘 먹힌단 말인가?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을 때 사단이 내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도록 여지껏 방해했던 수단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언어를 오염시키는 방법이였구나 하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사랑’ ‘용서’ ‘행복’ 등에 대한 개념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전혀 잘못된 정의(definition) 때문에 나는 그것들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몰랐다. definition이란 결국 A와 B를 구분지어 줄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인데, 구분짓는 것은 차별적인 것이니 그냥 A=B라고 하자고 하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결국 A가 무엇인지, B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결국 언어의 정의를 호도한다는 것은 진리를 깨닫는 것을 가로막는 심대한 죄악인데, 신앙인들조차 왜 정확한 개념정리에 인색한 것인지 모르겠다. 책 중간에도 곳곳에서 의심가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끝맺는 글을 읽으니 저자가 확실히 그 정체를 드러내 주신다. “그리고 불평은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당신에게로 더 많이 끌어들인다…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당신은 불평함으로써 전 우주에 당신이 희생자라는 메시지와 에너지를 내보내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가해자들을 당신 쪽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이건 모 그 어떤 동기부여 연설가 안 부러운 수준이다. 내가 좋은 생각하고 좋은 말 하면 우주의 좋은 기운을 끌어들이고, 내가 나쁜 생각하고 나쁜 말하면 전 우주의 나쁜 기운을 끌어들인다는 어디서 참 많이 듣던 이야기다. Joel Austin 목사의 “Become a Better You”를 연상시킨다. 책 초반부터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다가 긍정적 사고의 힘을 예시하는 이야기로서 어떤 아가씨가 미스 어메리카가 되고 싶어서 난 미스 어메리카가 될거야를 수천번 되뇌이며 모든 미스 XXX 대회란 대회는 다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스스로의 모습을 거기에 매치해보았더니 정말 미스 어메리카가 되었더라는 이야기를 읽고는 미련없이 책을 덮어버렸다. Become a Better You가 베스트셀러이고, 내가 좋게 생각하고 있었던 교회부설 서점 유리창에 대문짝만하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고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고, 약간의 공포심마저 느꼈었다. 예수님의 존재를 본인을 위해 우주적 긍정에너지를 응축해서 빔으로 쏴주는 요술램프 속 지니 정도로 격하시켜버리는 책들이 어찌 기독교인들에게까지 베스트셀러로 추앙받을 수 있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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